정소수
鄭小秀1911. 3. 5 ~ 1945. 1.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구화회
- · 적우동맹
- · 조선공산당 남선운동그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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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0) 1911년 3월 5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덕곡면(德谷面) 장리(壯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소수(鄭召守)이다. 덕곡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7년 11월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같은 학교의 김성칠(金聖七)·황보선(皇甫善)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구화회(丘火會)를 조직하였다. 구화회 강령을 지(知)·각(覺)·약(躍)으로 정하고 서무·문화·재무의 3개 부서를 두었다. 조직 결성 후 공산주의 연구와 선전 등 사회과학을 학습하였으며, 동지 규합에 힘썼다. 1928년 4월 무렵 대구의 사회주의자와 중등학교 학생들로 조직된 항일 비밀결사 적우동맹(赤友同盟)에 가입하였다. 적우동맹은 1928년 2월 혁우동맹(革友同盟)에 소속된 학생들이 졸업할 경우를 대비해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조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였다. 적우동맹은 대구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의 실천이론으로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전술의 함양과 민족해방운동의 전개를 목적으로 하였다. 적우동맹이 학교 단위로 그룹을 나누어 회원을 배치하는 방침에 따라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 학생을 담당하는 제2그룹에 소속되어 황보선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매주 1회 개최된 그룹회의를 열어 활동 상황을 점검하고 활동 방안 등을 논의하였다. 1928년 4월 동맹원의 자격문제와 대구고등보통학교에서 발생한 한국인 학생의 강제 전학 조치에 대한 대응 방법에서 의견 충돌로 해체되었고, 구화회도 적우동맹의 해산과 동시에 조직의 발각을 우려하여 5월에 해산하였다. 1928년 9월 항일 비밀결사에서 활동하였던 학생들의 주도로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 실현’, ‘교장 및 신망 없는 교사의 배척’ 등을 요구하며 단행된 동맹휴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동맹휴학은 대구의 여러 학교로 확산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그해 10월 퇴학 처분을 받고 피신하였으나, 서울역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미결 상태로 1년 4개월여 동안의 옥고를 겪었다. 1심을 거쳐 1930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1930년 여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東京) 소재의 다아이세이중학교(大成中學校) 5학년으로 편입하였으나 중퇴하였다. 이후 니혼(日本)대학 법률전문부에 입학하였다가 1931년 여름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고향에서 양조업에 종사하면서 1932년 부산적색노동조합건설협의회(釜山赤色勞動組合建設協議會)에 참여하여 메이데이 투쟁에 필요한 항일격문을 제작 배포하다가 붙잡혔으나 면소로 풀려났다. 1934년 6월 고향 인근인 경북 달성군(達城君) 현풍면(玄風面)에서 농촌진흥조합 조합원을 대상으로 적색농민조합의 결성을 계획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혔다가 그해 7월 풀려났다. 1935년 1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운동을 모색하고 있던 김태영(金台榮)을 만나 대구에 조직되었던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朝鮮共産主義者協議會)의 조직문제, 전국협의회와 지방협의회와의 권한문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활동에서의 권대형(權大衡)의 파벌적 활동 등 과거 공산주의운동에서 나타난 문제를 토의하면서 활동 방향을 협의하였다. 그 결과 코민테른 「12월 테제」와 프로핀테른 「9월 테제」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목표로 활동하기로 합의하고 경북·경남·전북·전남지역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공산당 남선운동그룹을 결성하여 책임자가 되었고, 김태영이 경남지방의 오르그(조직)을 담당하였다. 1935년 4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경남 동래군 기장면(機張面) 대라리(大羅里)에서 박용선(朴容善)·김도엽(金度燁)·주청송(朱靑松)을 만나 도시 지역에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오르그의 인선방침을 협의하였다. 활동 도중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었으며, 1935년 12월 붙잡혀 2년여 동안 미결 상태로 고초를 겪었다. 1937년 12월 2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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