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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斗烈

鄭斗

1922. 12. 27 ~ 2003. 1. 3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斗烈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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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주(蔚州)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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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동래중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노다이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922년 12월 27일 경상남도 울주군(蔚州郡) 상북면(上北面) 양등리(楊等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화산강조(華山剛照)를 썼다. 동래중학교에 수학하였다. 1940년 11월 23일 동래중학교 5학년 재학 당시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가 열렸다. 대회에 동래중학교·부산 제2상업학교·진주농업학교의 한국인 학생 1,000여 명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작년도 우수학교인 동래중학교 대신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를 우선 입장시켰다. 또한 심판장을 맡은 일본군 장교가 경기를 편파적으로 운영하여 일본인 학교를 우승시켰다. 이에 분노하여 폐회식 후 일장기가 내려질 때, 참가한 한국인 학생들과 함께 일본 국가 대신에 「아리랑」을 불렀다. 그 뒤 참가 학생들과 함께 당시 금지곡인 「황성옛터」·「아리랑」·「양산도」·「도라지」 등의 노래를 부르며 시위 행진하였고, “조선 독립 만세, 일본놈 죽여라, 무엇이 내선일체냐, 무엇이 동아의 맹주냐, 너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 학생들을 이끌고 심판장 노다이(乃台兼治) 대좌의 관사로 몰려가 습격하고 노다이를 구타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심을 거쳐 1941년 6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인 1942년 초 학업을 포기한 채 울산의 암자에 들어가 1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 펑톈(奉天)의 한 전기회사 기숙사에 야학을 열어 우리글을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애국·애족 운동을 지속하였다. 광복 후 미 군정청의 비서실에서 근무하였고, 한국전쟁 당시 중앙방송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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