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昌元
昌元1910. 2. 1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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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0) 1910년 2월 12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마산면(馬山面) 청정리(淸亭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민창원이다. 1930년 오산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다니면서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해 항일 격문을 작성하고 배포하였으며, 이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30년 1월 17일 선우기성(鮮于基聖)과 함께 교우회(校友會) 회장이었던 신기복(申基福)을 만나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신기복과 뜻을 같이 하기로 결의한 후 항일 격문과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적은 격문을 교실 책상에 넣어두었으며,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격문을 배부하였다. 1월 18일 격문을 읽고 분노하는 학생들을 만세시위로 이끌어내기 위하여 먼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동료 학생인 노명길(魯明吉)이 조선총독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학생 38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 ‘약소민족만세’, ‘학생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주읍(定州邑)으로 나아갔다. 오후 1시 경에는 학생들과 함께 이언면사무소(伊彦面事務所)까지 진출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자 신기복·이안식(李安息)·김봉규(金奉圭) 등과 함께 돌과 맨주먹으로 대항하였으며, 학생들과 함께 교가(校歌) 등을 부르며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그러다가 주도자들과 함께 만세시위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고, 2월 1일 신의주검사국으로 송치된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30년 3월 26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한편, 이 일로 학교로부터 퇴학처분을 당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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