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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복

鄭基福

1919. 10. 2 ~ 2007.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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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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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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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9년 10월 2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청하면(淸河面) 미남리(美南里)의 자작농가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옥원기복(玉原基福)이다. 청하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선교사가 경영하는 대구의 사립 계성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 3월 4학년 수료와 동시에 고학을 목적으로 일본 도쿄(東京)로 유학하였다. 신문배달을 하며 1940년 4월 니혼(日本)대학 예술학원 예과에 입학하였다가 1941년 4월 니혼대학 예술학원 전문부 창작과에 들어갔다. 도쿄에서 고학 생활 중 차별 대우를 받으며 점차 민족의식이 농후해져 일제의 민족차별에 분개하고 일본의 지배 아래 한인의 행복을 바라기 어렵다고 판단해 독립을 열망하게 되었다. 1940년 10월 이전부터 교제하고 있던 당시 도쿄 주오(中央)대학 이진호(李振皥)와 동지적 결합을 맺고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주입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그후 동지 포섭에 힘을 쏟아 1941년 10월에는 메이지(明治)대학 심달윤(沈達潤) 등을 포섭하였다. 이후 동지들과 유대를 강화해가면서 이진호 및 다른 이들의 하숙집에서 회합을 거듭하며 독립운동의 방안에 관해 토론을 하고, 민중 지도자로서 수업을 쌓았다. 이때 태평양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이를 독립의 기회로 삼을 것을 역설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처한 불리한 상황을 대중들에게 알리며 일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43년 3월 붙잡혔다. 일본에서 체포된 이후 국내로 이송되었고 심하게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2월 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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