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920. 6. 27 ~ 1979. 9.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부산중학조선인회
- · 고문(高文)그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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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3) 1920년 6월 27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삼천포면(三千浦面) 선구리(仙龜里)에서 태어났다. 삼천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3월 부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부산중학조선인회(釜山中學朝鮮人會, PMKC, Pusan Middle School Korea Combination)에 가입해 민족의식을 키웠다. 1938년 3월 부산공립중학교 졸업 직후 일본으로 건너가, 같은 해 4월 주오대학(中央大學) 제1예과 2학년에 편입하였다. 1940년 3월 예과를 수료한 후 같은 대학 법학부 1학년에 입학하였다. 주오대학 예과 재학 중 고담룡(高湛龍)과 교류하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키웠고, 1939년 7월 하순 고담룡·김운봉(金雲鳳)·구호림(具浩林) 외 2명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1940년 6월에는 학술 연구 및 친목 단체로 위장할 목적으로 결사의 이름을 ‘고문(高文)그룹’이라 지었다. 이후에도 계속 모임을 가지고 “중일전쟁 진행 상황에 따라 독립이 가까워지니 한층 더 독립 의지를 다지자”, “졸업 후 관리가 되거나 재계에 취업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 독립 운동을 수행하자”, “일본이 민족 동화 정책을 강화하므로 정신적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등 독립 운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독립 의지를 다졌다. 1941년 4월 모임에서 “독립을 이루기 전까지 합법적으로 조선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5월에는 “독립을 위해 민족의 단결심을 양성해야 한다”, “자력(自力) 본위의 독립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10월 “독립을 이루려면 문화 운동이 필요하다. 민족의 문화 수준 향상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10월과 11월 회합에서는 단결과 독립을 향한 노력을 강조하였다. 1942년 4월 모임에서는 독립 쟁취를 위해 “조선의 역사를 탐구해 일반인들에게 역사를 재인식 시켜야한다”고 역설하였다. 1942년 5월까지 십 수회에 걸쳐 회합하고, 민족 단결심 양성, 자력 함양, 민족의식 고양, 미국의 지원 등 독립 운동 방향에 대해 토의하고, 간디의 ‘비협력무저항주의(非協力無抵抗主義)’를 연구해 독립 운동에 참고하자는 논의도 하였다. 이런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1944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2년 8개월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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