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廷雨
廷雨1921. 11. 2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독서회(讀書會
- · 동경고등학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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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1년 11월 26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에 배재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의학부 예과와 지케이대학(慈恵大學) 의과대학 예과 진학을 위한 수험 준비 관계로 도쿄고등학원(東京高等學院)에 재학하였다. 도쿄(東京)에 거주할 당시 히라노순(平野舜)이라는 이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40년 8월 5일 도쿄시 요도바시구(淀橋區) 도쓰카쵸(戶塚町)에서 같은 학원에 재학 중이던 오유근(吳有根)을 만나,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차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만이 살길임을 역설하고, 항일운동에 힘쓸 것을 결의하였다. 그해 10월 2일 노재용(盧在容)의 하숙집에서 회합하고, “조선총독의 방침에 따라 내선일체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자산가로 불리는 경성화신백화점의 박흥식과 금광업의 최창학은 조선총독의 명령이라면 몇 십 만원의 기부금도 내면서도 일반 사회사업 등에는 전혀 기부하지 않는 등 조선인의 자산은 모두 일본인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동포의 실상을 한탄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였다. 1941년 1월 6일에는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현재 일본인에 의한 지배는 불합리하다는 것에 동조하며 조국 독립운동의 실행을 다짐하였다. 이후 오유근·노재용과 함께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립운동 상황과 국내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동향을 파악하면서 이에 호응하기 위해 조직 확대와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독서회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동료 회원이 모두 체포될 때 귀향을 한 상태라 체포를 면하였으나,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해 여수(麗水)에 체류하던 중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42년 11월 2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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