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첨
鄭聖瞻1853 ~ 1896. 5.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도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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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입암면(立巖面) 연당리(蓮塘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53년생으로 추정된다. 정익주(鄭翼周)의 장남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첨(聖瞻), 호는 철암(鐵巖)이다. 본명은 정태모(鄭泰模)이다. 경북 예천군(醴泉郡) 풍양면(豐壤面) 우망리(憂忘里)에 살았던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이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1613년 서석지(瑞石池)를 조성하고 은거하면서 그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1896년 김도현(金道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소식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고 있던 중, 일제와 친일정권의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분노가 폭발하여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었다. 1895년 12월 청량산(淸凉山)에서 거병하여 영양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에서 항전을 전개하였던 벽산(碧山) 김도현을 지원하였다. 1896년 3월 관동창의장(關東倡義將) 민용호(閔龍鎬)의 초청을 받고, 군사 60명을 거느리고 강릉(江陵)으로 진군하여 선봉장(先鋒將)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4월말 영양으로 귀환한 김도현이 청기면 상청리에 있는 검각산성(劍角山城)의 책보(柵堡)를 수리하고 통문(通文)을 돌리며 의병을 모집하는 등 의병진을 재편성할 때 참여하였다. 5월 8일 청기(靑己)의 소청전투(小靑戰鬪)와 5월 12일 입암의 사부령전투(思夫嶺戰鬪)에 참여하였다. 사부령전투는 김도현이 5월 12일 일본군의 입암 진입 정보를 입수한 후 3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입암면 연당리의 사부령 고개에서 일본군을 습격한 전투였다. 마침 비가 내려 화승총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의병들은 일본군을 향해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화승총의 탄환이 발사되어 의병의 형색이 드러났고 결국 의병은 무기의 열세로 말미암아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30여 명의 의병은 일본군에 맞서 도리깨·창·괭이 등의 농기구를 들고 싸웠다. 그 과정에서 동료 의병들과 함께 싸우다가 사망하였다. 향년 44세였다. 사부령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을 기리는 「사부령순국지사합동기념비(思夫嶺殉國志士合同紀念碑)」가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설립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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