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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기

任性基

1875. 2. 29 ~ 1907.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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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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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안(禮安)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예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전기의병(경북 울진)
  • · 후기의병(경북 안동
  • · 영양
  • · 울진)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5년 2월 29일 경상북도 예안군(禮安郡) 의서면(宜西面) 온혜동(溫惠洞, 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울진군(蔚珍郡) 평해(平海)에서 살았다. 이명은 임문호(任文鎬)를 썼다. 1896년 전기의병 시기와 1907년 후기의병 시기에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 경북의병장이라 칭하였다.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안동·영양(英陽)·울진·평해·영해(寧海) 등 경북 북부지역과 강원 남부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일어날 때, 1896년 강원 평해에서 의병을 일으켜 동해안을 중심으로 울진·평해 등지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여러 차례 교전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붙잡혀 3차례나 거듭 투옥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여 군사를 모아 경북의병장으로 다시 일어나 안동·영양·평해·울진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항전을 펼쳤다.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으로 인한 고종 강제퇴위 및 대한제국군 강제 해산에 항거하며 해산 군인들의 참여 속에서, 같은 해 9월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울진·평해·영해 등지에서 일본군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북 영해 지방에서 하덕근(河德根)과 함께 잡혀 대구(大邱)로 압송되었다. 그 후 1년 동안이나 구속되어 조사를 받다가 1907년 9월 18일 대구사장에서 대구진위대 군사에게 처형당하였다. 처형당하는 순간, 밝고 큰 목소리로 시를 읊었고, 하덕근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이때 나이 33세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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