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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魯福

福

1853 ~ 190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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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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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능주(綾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능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양회일 의병부대(쌍산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양회일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전라남도 능주군(綾州郡) 도림면(道林面, 현 화순군 이양면) 증동(甑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53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임춘화(林春化·林春華)이다. 지역의 유지로 참봉을 지냈다. 1907년 양회일(梁會一) 의병장과 함께 쌍산의소(雙山義所)를 세우고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호군장(犒軍將)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음)10월 양회일 의병장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의논한 후,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뒷산에 쌍산의소 본부와 의병들이 사용할 막사 및 훈련 장소 등을 조성하였고, 대장간을 개설하여 무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의병을 조직하기 위해 첫째 인재를 얻을 것[得人], 둘째 병기를 갖출 것[兵器], 셋째 군량을 확보할 것[糧度] 등을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인적·물적으로 철저한 준비 없이 성급하게 거의했다가 실패한 이전 의병들의 전례를 답습하지 않도록 하였다. 1907년 1월 19일 양회일의 이름으로 「격고문(檄告文)」을 발표하여 의병 봉기의 당위성을 분명히 하였다. 이 「격고문」을 통해 “군부(君父)가 훼손을 당하고 국모가 화를 입으면 인신(人臣)된 자는 마땅히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병자통상(丙子通商) 이후 갑오년과 을미년의 멸의(滅義)와 비통을 당했으며 을사년의 변괴로 5백년의 사직과 3천리 강토가 다 무너졌다.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조병세(趙秉世)·민영환(閔泳煥) 등의 원로들이 순국했으니 우리 모두 일어나서 왜를 물리치고 역신들을 응징하기 위해 3월 상순에 쌍산의진에 참여하라”라고 역설하였다. 1907년 (음)3월 약 200명을 모아 쌍산의진을 조직하고, 양회일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부장(部將) 신재의(辛在義), 선봉장 이광선(李光善), 중군장 임창모(林昌模), 후군장 노응현(盧應玄), 도포장 유화국(柳化國), 총무 양열묵(梁烈黙), 서기 이병화(李秉華), 참모 임상영(林相永), 군의 전신묵(全信黙) 등을 임명하며 부대의 체계를 갖추었다. 이들과 함께 (음)3월 9일 능주의 관아와 일제 헌병분견소, 일본인 상가 등을 공격하여 무기와 총탄 등을 획득하였다. (음)3월 10일 화순의 군아와 분견소 등을 습격하고 전신주와 전선을 잘랐다. 이어서 동복면(同福面)으로 나아가 곧바로 광주(光州)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능주군 읍내면(邑內面) 이십곡리(二十谷里)에 위치한 판치(板峙)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고 크게 패하였다. 이어서 양회일을 비롯한 다수의 간부들이 일본군에 붙잡히면서 부대가 와해되었다. 이때 일부 사람들과 함께 몸을 피하였고, 이후에도 고광순(高光洵) 의병부대에 이광선 등을 파견하여 지원하는 등, 재기를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09년 12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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