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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春花

春花

185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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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春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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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大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대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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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산남 의병부대
  • · 최세윤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6) 경상북도 대구(大邱) 서면(西面) 출신이다. 판결문에는 1908년 당시 나이가 32세로 1857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 11월부터 1908년 4월까지 최세윤(崔世允)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경북 장기군(長鬐郡)·흥해군(興海郡) 등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산남의진은 경북 영천(永川)을 중심으로 1906년부터 1908년까지 경북 남동부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펼쳤다. 1906년 3월부터 7월까지는 정용기(鄭鏞基)가 주도하다가 체포되면서 의병활동이 일시 중지되었다. 1907년 4월부터 8월까지는 풀려난 정용기가 다시 봉기한 후 의병부대를 지휘하였다. 1907년 9월부터 12월까지는 정환직(鄭煥直)이 아들 정용기를 대신해 의병부대를 재조직하고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1908년 2월부터 7월까지는 최세윤이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1907년 11월 20일경 최세윤의 부하로 들어가 화약 운반과 일본군 수비대·경찰 등의 동정을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같은 해 (음)11월 30일 최세윤의 부하 백 수십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장기군의 순사주재소를 습격해 한국인·일본인 순사 수명을 처단하고 총칼을 획득한 후 방화하였다. 1908년 4월 25일에는 다른 의병 6명과 함께 총기 4정을 휴대하고 흥해군 담계면(擔溪面) 이만동(李萬洞)에서 40냥, 숙후동(淑後洞)에서 40냥, 문성동(文星洞)에서 200냥을 모집하였다. 이어서 같은 해 5월 중에는 홍두동(洪斗洞)에서 돈 300냥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포항헌병분견소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8년 9월 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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