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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周發

周發

1868 ~ 1908.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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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周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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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시기는 알 수 업다. 다만, 1908년 작성된 자료에 당시 나이가 40세로 기록되어 있어 1868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경상북도 흥해군(興海郡)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그리고 한일신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이미 외교권을 상실한 한국의 내정까지 일본 통감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게 된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이 다시 의병을 일으킬 때 참여하여, 포군(砲軍)으로 경북 흥해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일초장(一哨長) 윤재만(尹在萬)이 지휘하는 3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흥해군 북안면(北安面) 수성동(水成洞) 동장으로부터 수차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4월 13일 수성동 주막에서 일제의 변장정찰순사대(變裝偵察巡査隊) 8명의 습격을 받고, 윤재만을 비롯한 7명의 동료 의병이 총살되었다. 이때 다른 포군인 어낙이(魚洛伊)·차경수(車敬守)·조양동(趙良洞)과 함께 붙잡혔고, 일제 순사대에 의해 압송되었다. 4월 15일 추가로 체포된 김수달(金守達)·이갑이(李甲伊) 등을 포함한 일행들과 흥해군 파계면(把溪面) 내곡동(奈谷洞)에서 숙박하게 되었다. 4월 16일 새벽 두 시경 집주인으로부터 작은 칼을 빌려 포승(捕繩)을 절단하고 도주를 시도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이갑이·조양동·차경수 등과 함께 순사대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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