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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翕

鍾翕

1861. 1. 20 ~ 19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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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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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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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하락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1년 1월 20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기계면(杞溪面) 현내리(縣內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 김하락(金河洛)이 통솔하는 의병부대에 합류한 후, 참모와 소모장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에 분개한 전국 각지의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켰다. 경북 의성(義城) 출신인 김하락은 이천(利川)을 중심으로 포군을 확보하고, 동지들을 주변 지역으로 파견해 의병을 모으게 하였다. 1896년 1월에는 흩어진 병사를 다시 모아 훈련을 시키면서 의병부대를 재편성하였다. 그리고 김하락 의병부대는 같은 해 4월 중순경 경상도로 들어가서 영남지방의 의병부대와 세력을 연합하였다. 1896년 (음)5월 5일 김하락 의병부대가 경주(慶州)의 인비점(仁庇店)에서 재편할 때, 이준구(李俊久)·장상홍(張相弘) 등과 함께 참모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하락 의병부대가 경주를 점령했을 때, 기계면(杞溪面) 소모장(召募將)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다른 소모장들과 함께 군사를 널리 모아 의병부대의 세력을 크게 확대시켰다. 같은 해 (음)5월 25일에는 이상태(李相台)·장상홍 등과 함께 김하락으로부터 2개 부대의 군사를 받아 청하(凊河)로 떠났다. 그러나 같은 해 (음)6월 영덕(盈德)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김하락 의병부대가 패배하여 김하락이 사망하고 결국 의병부대가 해산되자 향리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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