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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誠

鍾誠

1871. 5. 8 ~ 191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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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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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茂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무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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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문태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1년 5월 8일 전라북도 무주군(茂朱郡) 무풍면(茂豊面) 칠곡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문태수(文泰洙) 의병부대에 들어갔고, 이후 선봉장(先鋒將) 등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주권을 강탈하고 그 부속 밀약에 의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로 인해 일제의 가혹한 토벌로 잠시 소강상태였던 의병운동은 다시 시작되었다. 1908년 전북 무주 덕유산(德裕山)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문태수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문태수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통감부가 설치되는 등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최익현(崔益鉉)을 만나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고, 지리산에서 거병하였다. 이후 호남과 경남 일대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고, 1907년 전국 각 도의 의병장들이 모여 십삼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을 결성할 때 호남창의대장에 추대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았다. 문태수 의병부대에 합류한 뒤 아장(亞將)에 임명되었으며, 무주·함양(咸陽)·안의(安義) 일대에서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1908년 2월 28일에는 선봉장이 되어 60여 명의 의병과 함께 무주주재소를 습격하였다. 1909년 5월에는 남원(南原) 일대에서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일제 헌병과 접전하였다. 같은 해 8월 중순에는 의병장 문태수와 충북으로 이동하여 영동(永同)·청산(靑山)·옥천(沃川)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해 10월에는 경부선 이원역(伊院驛)을 습격하여 불을 지르고 일본군 3명을 생포하기도 하였다.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다가 1910년 4월 18일 밤 무주 흑석산(黑石山) 계곡에서 소수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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