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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善

在善

187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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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在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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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寧越)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영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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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변학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상동면(上東面) 굴내동(掘內洞) 세송리(細松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1년 당시 36세이므로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8년 이후 변학기(邊鶴基) 의병부대에 참여해 군자금과 군수품 등을 조달하였다. 1907년 일제는 한일신협약 체결을 강요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러자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군인들의 무장 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 항쟁이 전개되었다. 승려 출신으로 군대 해산 당시 육군 하사였던 변학기(邊學基)는 해산 군인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변학기 의병부대에 가담해 항일투쟁을 시작하였고, 군자금과 군수품 등을 모집하였다. 1908년 4월 12일 같은 마을 출신으로 목수인 김순여(金順汝)를 비롯해서 3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화승총을 휴대하고 강원도 삼척군(三陟郡) 상장면(上長面) 장성동(長省洞)으로 들어가서 면장 김경순(金京順)으로부터 화승총 2정을 군수품으로 징발하였고, 마을 주민 정재문(鄭在文)에게서 현금 6원을 군자금으로 조달하였다. 이후 의병활동을 지속하다가 붙잡혀 일본군 헌병에게 신문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1년 2월 25일 함흥지방재판소 원산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4월 14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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