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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찬섭

張贊燮

1881 ~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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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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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위원(渭原)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위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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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대덕면(大德面)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3년 당시 43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장찬섭(張贊涉)이 있다. 이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9월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불령선인초토계획(不逞鮮人焦土計劃)으로 인한 경신참변(庚申慘變)으로 간도 지역에서의 독립군의 거점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후 1922년 봄 만주 지린성(吉林省) 환런현(桓仁縣)에서 열린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에서는, 남만주의 독립군단들 중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한족회(漢族會)),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광한단(光韓團), 한교민단(韓僑民團), 평북독판부(平北督辦部),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 대표자들이 모여 각 조직을 통합한 형태의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조직하였다. 나아가 1922년 8월 23일, 8단 9회의 대표자 71명은 환런현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의(南滿韓族統一會議)를 재차 개최하여, 여기서 다시 한 번 각 조직을 완전히 통합할 것을 확약하고, 남만한족통일기관으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하였으며, 8월 30일 남만한족통일회 회장 김승만(金承萬)이 통합조직을 공식 선포하였다. 통의부는 군사활동과 교민의 자치행정을 겸임하는 조직으로, 일종의 군정부(軍政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민사·교섭·군사·재무·학무·법무·참모·교통·실업 등 9개 행정부서를 두었으며, 의용군(義勇軍)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보유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남만주지역 독립군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위원군 대덕면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1923년 위원군 위송면(渭松面)의 이조경(李祖京)·장한주(張翰周)와 더불어 연락망이 일제 경찰에 적발되어 붙잡혔다.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사망하였다. 일제 경찰은 스스로 감옥 창살에 목을 매 자살하였다고 해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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