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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一權

一權

1902 ~ 1927.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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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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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청년단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0)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26년 일본 외무성 기록에 24세로 표기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을 거쳐 참의부(參議府)에 참여하였다. 대한청년단은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로도 불리며 1919년 11월에 김승만(金承萬)·박춘근(朴春根)·오동진(吳東振) 등을 중심으로 만주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였다. 이들의 모체는 함석은(咸錫殷)·박영우(朴永祐) 등이 1919년 3월에 결성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이었다.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면서 독립전쟁 등 대규모 군사활동은 임시정부의 지시를 우선시하고 군자금 모집, 일경 및 친일파 처단 등에 주력할 것을 천명하였다. 대한청년단에 가담하여 1921년 5월경에는 장진원(張鎭元)·최재경(崔在京) 등 4인과 군자금 조달을 논의하고 1922년 6월에는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 4,000원을 모집하였다. 참의부 설립 직전, 참의부 계열 통합 활동에 가담하여 유혈사태 중단 및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통합을 지속적으로 촉구하였다. 1924년 4월 1일 육군군사회의 명의로 발표된 「경고재만군민(警告在滿軍民)」에서 의용군 제3중대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여하여 통의부의 공격 행위를 규탄하고, 임시정부 관할 하에서 문책 및 조건 없는 통합을 주장하였다. 1924년 5월경에는 안창호(安昌浩)가 주도한 임시정부 중심의 대동통일(大同統一)을 주장하는 남만주군인대표 중 한명으로 선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해당 시기 참의부 내에서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으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치활동에 대표로 파견되었던 경력으로 미루어 상당한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통합운동뿐만 아니라 무장투쟁도 병행하여, 1926년 2월경에는 24세의 나이로 지린성(吉林省) 환인현(桓仁縣) 일대를 중심으로 약 30명의 인원을 지닌 참의부 제3중대 소속 소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경에는 대원에게 중국군 민병복(民兵服)을 착용시키고 국내로 진공하여 3~4개월 동안 평안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27년 9월 2일에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송면(松面) 송성동(松成洞) 약수령(藥水嶺)에서 초산경찰서(楚山警察署) 소속 순사대와 교전을 벌였다. 대원들 다수가 권총으로 무장하여 장총 등으로 무장한 일제 경찰에 비해 화력 상 열세에 처해 있었음에도 6시간 격전을 벌이다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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