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弘允
弘允1856 ~ 1920. 11. 3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훈춘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기록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65세로, 1856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하구동(河口洞)에서 거주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훈춘현 일대에서 독립군을 지원하고 군자금 모집에 협조하였다. 훈춘현 일대는 두만강의 지류인 훈춘강 서안(西岸)에 위치한 곳으로, 한국과 러시아 국경에 인접한 곳이었다. 따라서 많은 한인들이 국경 일대를 드나들며 항전하던 독립군을 지원하고 협력한 곳이었다. 일본군은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크게 패한 후 중국 영토인 만주지역으로 침입해 한국 독립군을 대대적으로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중국 영토로 침입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일본은 중국의 마적단(馬賊團) 창강하오(張江好)를 포섭해 한국인으로 위장시킨 후, 1920년 10월 2일 훈춘의 일본총영사관(日本總領事館)과 일본인을 공격하게 하였다. 이것이 일본이 조작한 ‘훈춘 사건’이다. 이후 일제는 이를 보복한다는 핑계로 일본군 19사단과 20사단의 2만여 병력을 만주로 파견해 일명 ‘초토화작전(焦土化作戰)’을 펼쳐 만주 일대의 민간인 학살과 거주지 방화를 무차별로 자행하여 독립군의 근거지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1920년 11월 3일 훈춘현 하구동에 침입한 일본군 19사단 76연대에게 방서일(方瑞一) 등과 함께 붙잡힌 후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였다. 1921년 3월에 작성된 일본군 19사단 보고서에 의하면, 봉오동 전투의 주역인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군자금을 지원해 준 인사이므로 즉각 총살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통해서 볼 때, 대한독립군 등의 무장항일단체에 적극 협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망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고령인 65세였던 점으로 미루어 무장항일투쟁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훈춘현 일대에서 독립군 지원과 군자금 모집에 협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