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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浩善

浩善

1887. 9. 12 ~ 192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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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浩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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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동(江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7년 9월 12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원탄면(元灘面) 상리(上里)에서 태어났다. 원탄면 면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향촌회(鄕村會), 1920년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7월경 면서기로 근무하던 중 박태용(朴泰容)의 권유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향촌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1920년 대한광복군총영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 3월 의용대를 개칭한 광복단이 4월 이후 청년단연합회 제2차 정기총회를 계기로 대한독립단에서 분화된 민국독립단과 연합하여, 그해 7월초 만주 콴뎬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총영장은 오동진(吳東振)으로, 총영은 국내의 각 지역에 도영과 군영을 설치하였고 국내에서 무장활동을 하고 있던 최시흥(崔時興)·김영화(金永和) 등과 연합하여 별영을 두었다. 이때 광복군총영 중앙기관 비서 겸 모험부장(冒險部長)이었던 주석환(朱錫煥)과 연계하여 광복군총영에 가입하고 경고문 인쇄 및 배부 활동을 하였다. 1920년 9월 향촌회 가입을 권유했던 박태용으로부터 단원과 군자금 모집을 촉구하는 경고문을 전달받고, 면사무소 등사기를 이용하여 30여 장을 인쇄하였다. 그 인쇄물을 최운섭(崔雲燮)에게 전달하여 평양(平壤) 등 주요 도시에 배포하게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계속해 나가던 중 1922년 1월 4일 한문기(韓文基)가 성천경찰서(成川警察署)에 체포된 것을 계기로 평남지역 각 지역 경찰서가 협력하여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소탕 작전을 실시할 때 주석환 등 대원들과 같이 붙잡혔다. 1922년 4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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