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現弼
現弼1864 ~ 미상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비군비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기록에 따르면 1922년 당시 59세로,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이명은 이현필(李鉉弼)이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지린성(吉林省) 창바이현(長白縣) 17도구(道溝)에서 거주하였다.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이하 군비단)에 가입하고 총무장(總務長)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창바이현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후 군비단 조직에 참여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군비단은 1919년 5월경 함경도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창바이현을 본거지로 삼아 설립된 무장항일단체로, 이태걸(李泰杰)·정삼성(鄭三星)·이동백(李東伯) 등의 주도로 조직되었다. 동지들과 함께 함경도를 오가면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일제 경찰과 교전하거나 일본 기관을 파괴하는 등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주요 간부는 군사부장 이병률(李秉律), 경호부장 조성극(趙誠極), 통신부장 이창식(李昌植), 재무부장 설관성(薛寬星) 등이었다. 특히 1921년과 1922년에 걸쳐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던 군비단은 흥업단(興業團)·광복단(光復團)·태극단(太極團) 등과 연합하여 지속적인 항일전쟁을 모색하였다. 이때 간부들을 총괄하는 총무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