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漢翼
漢翼1901 ~ 1921. 10.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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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옥상면(玉尙面) 어상동(於上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1년 사망 당시 21세로, 1901년생으로 추정된다. 1920년 5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류허현(柳河縣) 삼원보를 기반으로 결성된 후 서간도 지역에 지단(支團)을 설치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였고, 1920년에 접어들면서 국내 진공을 위해 황해도와 평안도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특히, 군자금 모금 활동과 친일세력 암살, 면사무소와 주재소 시설 방화 등을 통해 무장투쟁을 적극 전개하였다. 1920년 5월 대한독립단에 가입하고, 고향인 의주의 천마산(天摩山)과 인접한 창성군(昌城郡) 화봉산(華峯山)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던 유격대인 천마산대의 일원이 되었다. 천마산대는 단장 최시흥(崔時興)이 30여 명의 대원을 이끌고 1920년 7월부터 평북 의주 일대를 휩쓸고 다닌 유격대였다. 천마산대 일원으로서, 권총을 소지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1920년 5월 27일 오후 12시 동지 김지풍(金志豊) 등과 함께 총을 소지하고 의주군 고녕삭면(古寧朔面) 동고동(東古洞)에 이르렀다. 이곳에 거주하는 김모(金某)·김치수(金致洙)·한효장(韓孝長)·김기록(金基祿) 등으로부터 200원을 모금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천마산대가 모집한 군자금은 1만원에 이를 정도였다. 당시 군자금 1만원은 대한독립단원 200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금액이었다. 또한 천마산대는 1920년 7월경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최학정(崔學貞)과 같은 친일 세력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이후 같은 해 8월 13일 새벽 2시 단장 최시흥의 지휘 아래 동향(同鄕)의 동지 이정서(李貞瑞)·김효준(金孝俊) 등 30여 명과 함께 고향 인근의 옥상면사무소(玉尙面事務所)와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습격 당시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포위한 천마산대 대원들은 소지한 권총과 화승총 등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일제 경찰과 면사무소 관리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 결과 일제 관원들은 부상을 입거나 도주한 것으로 보이고 일본 순사 와타나베 넨조(渡邊念藏)는 중상을 당하였다. 관원들이 도주하자 천마산대원들은 비어 있는 면사무소에 섶을 놓고 불을 질러 면사무소를 전소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해 천마산대원들은 일제의 집중적인 추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후 체포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동지인 이정서·김효준·최지관(崔志寬)·김순호(金順浩)·최운봉(崔運鳳)·손봉선(孫鳳善)·임명규(林明奎)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21년 4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 살인죄, 방화죄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3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집행되어, 같은 해 10월 1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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