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學俊
學俊미상 ~ 1921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는 알 수 없다. 다만, 1920년 12월 10일 무렵에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진동면(鎭東面) 내유포(內楡浦)에 거주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이곳에서 광복단 모연대원(募捐隊員)에게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갑산군 지역은 만주와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1920년 당시 항일무장단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무장항일단체인 광복단과 연관이 깊어 1920년 7월 광복단은 함경도 지역에서 단원을 모집하여 지단을 설립하고 군자금 모집에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11월 7일 광복단의 염흥미(廉興味)가 모연대원 16명을 이끌고 갑산군에 진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보혜면(普惠面) 대평리(大坪里)에서 일본군 20여 명과 조우하였다. 결국 일본군과 교전을 벌인 끝에 염흥미는 사망하였고, 일본군도 7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무렵 그해 12월경 광복단의 모연대원에게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으나, 1921년 11월 3일자 『신한민보』 기록에 의하면 동리의 상당한 부호이자 유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본군 밀정이었던 조카 이현준(李鉉俊)이 인근 동리인 외포리(外浦里)에 살면서 평소 사적인 유감을 갖고 있다가 군자금 제공 혐의로 밀고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즉시 체포하려 했으나, 이때에는 피신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21년 일제 경찰에게 추격당하던 중 진동면 동점리(銅店里)에서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