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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泰律

泰律

1901 ~ 192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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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泰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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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기록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20세로, 1901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1920년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부응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 등 무장독립운동 세력들이 ‘군정서’로 개칭하여 임시정부 산하에 편입되었다. 이때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에서 군정서에 가담하여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는 독립전쟁을 대비하여 군사제도를 정비하고, 각지에서 18세 이상의 남자를 대상으로 군적 등록사업 등을 진행하였다. 이처럼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들이 만주는 물론 국내로 잠입하여 평안도·함경도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자, 일제는 독립군의 근거지가 되는 간도 일대를 침공하기 위해 그 8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우고 훈춘사건(琿春事件)을 빌미로 삼아, 같은 해 10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간도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로 인해 독립군이 큰 피해를 받은 한편,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던 만주지역 한인사회, 항일단체, 학교, 종교단체 등 역시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군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을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10월 30일 군정서 대원 최태길(崔太吉)과 함께 일본군 보병 제75연대에 의해 총살당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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