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珍
昌珍미상 ~ 1937. 3. 23
관련 단체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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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0)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1937년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혁명군은 1929년 조선혁명당 산하에 조직된 항일무장단체이다. 그해 3월 만주 지린(吉林) 우마행호동(牛馬行胡洞)의 국민부 사무소에서 조직되었으며, 7부 3위원회로 중앙당부를 편성하고, 이 중 군사위원회 밑에 국민부의 군대를 당군으로 개편해 조선혁명군이라 불렀다. 같은 해 5월 군사위원회 위원장 겸 사령관으로 이웅(李雄)을 필두로 하여 양세봉(梁世奉)·윤환(尹桓)·이태형(李泰馨)·김창헌(金昌憲) 등이 각각 제1~8중대장으로 선임되었다. 12월에는 군사위원회 총사령관으로 이진탁(李辰卓)을, 부사령관으로 양세봉, 참모장으로 이웅을 중심으로 하여 7개대로 편제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 발발 이전까지는 독립군과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하다가, 사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하게 되었으며, 중국 의용군(義勇軍)과의 연합작전 등을 통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조선혁명군에는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요소가 후일 내부의 좌우파의 대립을 야기하였다. 결국 내부의 좌우대립이 점차 고조되면서 1930년 8월 유혈사태가 초래되었다. 이후 조선혁명군의 제5중대장 이종락(李鍾洛)이 현정경(玄正卿) 등의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탈퇴하였다. 이들은 지린성(吉林省)과 흑룡강(黑龍江)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혁명운동을 전개하면서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朝鮮革命軍 吉江指揮部)’를 설립하였다. 이에 대항해서 조선혁명군은 흑룡강과 지린 지방에 ‘흑길별동대(黑吉別動隊)’를 편성 및 설립함으로써 세력이 양분되었고, 이로써 조선혁명군의 세력은 축소 재개편되었다. 이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일본군이 대대적으로 증가하고, 1934년 9월 일본군과 격전 중 총사령관 양세봉이 전사하면서 세력이 크게 축소되었고, 1934년 11월 11일 조선혁명군은 조선혁명군정부로 전환되었다. 1935년 9월 중한항일동맹회(中韓抗日同盟會)를 통해 중국군과 연합해 항일운동을 지속해 나갔지만,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때에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에서 조선혁명군 제1사 제2분대 삼사(三士)로서 활동하였다. 1937년 3월 23일 일본군과 전투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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