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振奎
振奎1893 ~ 1920. 11. 7
관련 단체
- · 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없다. 일제 기록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나이가 27세로, 1893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도 알 수 없지만, 활동 당시에는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유수하자(柳樹河子)에 거주하였다. 1920년 군정서(軍政署) 소속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자료에 ‘군정서’ 소속으로 옌지현에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북로군정서라고도 불리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20년 군정서의 일원으로 주로 무기를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여러 무장독립운동 단체가 만주에서 조직되어 활동하면서 일제에 저항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이른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작성해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세력을 약화시키고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에 일제는 1920년 10월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여 간도에 대규모 병력을 출병시켰다. 그리고 그해 10월부터 이듬해인 1921년 5월까지 간도에 파견된 약 20,000명의 일본군은 독립군의 근거지와 한국인 마을을 파괴하였으며, 수천 명의 한국인을 학살하였다. 일제가 간도에 병력을 증강하면서 독립군의 활동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의군단(義軍團)·국민회(國民會)·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군정서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크고 작은 활동도 제약을 받았다. 그럼에도 독립군들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무기를 조달하는 등 항일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군정서 일원으로 무기를 운반하다가 일본군 제19사단 74연대에게 발각되었고, 1920년 11월 7일 일본군의 총격에 맞아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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