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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枝奉

枝奉

185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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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枝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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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만주방면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노인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생지는 자료의 한계로 확인되지 않는다. 1922년 신문기사에 당시 나이가 70세로 기록되어 있어, 1853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펑톈성(奉天省) 콴뎬현(寬甸縣) 대불구(大弗溝)에 거주하였다. 1922년 대한독립노인단을 설립하고 단장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국내 만세운동의 영향 아래 만주 지역에서는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결성되었다. 무장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운동단체, 한인사회 기반과 생활 안정을 목표로 설립된 민간단체 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연합단체 등이 있었다. 그 중 50세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된 대한독립노인단도 조직되었다. 당시 70세의 나이로 대한독립노인단 단장직을 맡을 때 부단장은 김송일(金宋一)이었고, 주요 대원으로 김세전(金世田) 등이 있었다. 1922년 서간도에서 설립된 대한독립노인단의 단원들은 전투에 나가지는 못하는 대신 군자금 모집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언젠간 일본군이 철수하는 것을 예상하고 국내로 대대적인 침입을 계획하면서, 관할내의 매호마다 30전씩 자금을 거두었다. 사무소는 콴뎬현 대정구(大井溝)에 있었다. 이때 그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한독립단과 기타 단체를 후원하였다. 그리고 총 수만 원에 이르는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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