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豊
在豊1872 ~ 미상
관련 단체
- · 동삼성한족생계회
- · 흥업단
- · 백산무사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1923년 당시 40세이므로 1872년생으로 추정된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 푸쑹성(撫松城)에 거주하였다. 1918년 이후 동삼성한족생계회(東三省韓族生計會)·흥업단(興業團)·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등의 단체에 들어가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8년 지린성 류허현(柳河縣)에서 항일독립운동을 목표로 한 자치조직인 동삼성한족생계회가 만들어질 때 발기인(發起人)으로 활동하였다. 동삼성한족생계회는 이주 한인의 중국 국적 취득과 중국 당국의 지원을 받아 한인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표방하였다. 1919년에는 펑톈성(奉天省) 린장현(臨江縣)에서 흥업단 주비부장(籌備部長)으로 의연금 모집 활동에 앞장섰다. 1919년 푸쑹현에서 조직된 흥업단은 산업의 진흥과 항일무력투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후 흥업단은 허룽현(和龍縣)에 있던 대종교(大倧敎) 총본사(總本司)와 왕칭현(汪淸縣)에 있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였다. 1921년에는 창바이현(長白縣) 삼도구(三道溝) 마이하(馬易河)에서 백산무사단 지부총단장(支部總團長)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만주에서 조직된 백산무사단은 린장현 모아산(帽兒山)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으며, 약 6,000명의 단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백두산의 무사(武士)’라는 의미를 가진 백산무사단에 소속되어 만주와 국내에서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지단 조직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특히, 단원 대부분이 평안도 출신으로, 활동범위도 평양(平壤)과 순천(順川) 등의 지역까지 이어졌다. 1923년 2월 16일에는 독립단의 수령으로 창바이현 삼도구에서 부하들을 모아놓고 독립운동방침을 결정하였다. 당시 소속되었던 독립단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이때까지도 독립운동단체 지도자로 활발하게 항일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