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載仁
載仁1900. 9. 26 ~ 1964. 12. 3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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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0년 9월 26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 청담리(淸潭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군자금 모집을 위한 암살단을 조직하고 관련 문서를 인쇄·배포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3월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서로군정서의 집법과장(執法課長) 최우송(崔友松)으로부터 군자금 모금 지시를 받고 국내로 파견된 김동순(金東淳)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비밀결사 단체인 암살단을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함께 1920년 4월 경부터 같은 해 9월 경까지 김교상(金敎爽)·한진교(韓震敎)·이섬(李暹)·홍영전(洪永傳) 등과 함께 자택과 김교상·안교동(安敎童) 등의 집에서 인쇄기를 이용하여 독립의 내용을 담은 문서를 인쇄하고 반포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인쇄·배포한 문서는 “대한독립운동을 위해 생명·재산을 다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중앙부의 명에 복종하기로 서약한다'라는 취지를 담은 서약서 약 1,000장,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경고문 약 200장, 암살단 취의서 약 3,000장, 선포문 약 1,000장, 대한독립단 지방군 시행 규령 80권, 대한독립단 경무국 시행 규령 약 340권, 대한독립단 취지서 등이었다. 이 문서에 기재된 대한독립단은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다. 1919년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만주지역 대표자 500여 명이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모여 독립운동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후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해체되었고, 단일 기관인 대한독립단이 설립되었다. 대한독립단은 창단 이후 여러 의병부대를 포섭하고 만주지역과 국내에서 청장년들을 모아 병력을 증강시켰다. 그리고 훈련된 대원들을 국내로 진입시켜 전투하게 하고, 만주에서 일제 경찰과 앞잡이들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1919년 7월부터 국내로 단원들을 파견하였고, 지단 조직·의연금 모집·주재소와 면사무소 습격·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하지만 1920년 10월 대한독립단 국내지부 설치를 기도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김교상·강학희(姜學熙) 등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921년 5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처벌령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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