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붕익
丁鵬翊187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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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성양면(城陽面)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1년 당시 50세이므로 1872년생으로 추정된다.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덕천지단의 재무감으로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서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던 세력들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독립 운동의 본격화를 위해 산재한 조직 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1919년 4월 15일 농무계(農務契)·향약계(鄕約契)·보약사(保約社)·포수단(砲守團)·의병계열 인사 560명이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대한제국의 재건을 주장하는 이른바 복벽주의(復辟主義)를 내세웠다. 이들의 「대한독립단통칙(大韓獨立團通則)」을 보면 “남북만주와 조선내지에 기맥을 상통, 조선독립의 완전한 성취를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으며 주된 활동 방식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장 투쟁을 펼치고 반역 분자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대한독립단은 무장독립단체였던 만큼 군자금 확보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각 지단에 재무부를 설치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재만(在滿) 한인들은 대부분 빈농들이었으므로 군자금 모집이 여의치 않아 국내로 지단 설치를 확장하게 되었다. 국내 지단은 주로 황해도, 평안도 지역 집중되었는데 평안도의 정주군(定州郡)·덕천군·운산군(雲山郡)·박천군(博川郡)·가산면(嘉山面), 청룡면(靑龍面)·태천군(泰川郡)·평원군(平原郡)·강서군(江西郡)·강동군(江東郡)·순천군(順川郡)·개천군(价川郡)과 황해도의 해주군(海州郡) 등에 설치되었다. 지단 확장과 함께 덕천군에도 1920년 4월 지단이 설치되는데 그해 9월 박승혁(朴承赫)의 권유로 가입하여 재무감을 맡았다. 이윤실(李潤實)에게 지단장을 맡을 것을 직접 권유하여 지단장 이윤실, 부지단장 정계록(丁繼祿), 총무 정진원(丁進源), 서기장 김승문(金勝文), 통신부장 서상억(徐尙億) 등과 함께 지도부를 구성하였다. 이들 대부분이 덕천 지역의 저명한 유림이었다. 재무감이 된 후 30원을 지단에 헌납하고 뜻을 같이하는 덕천 지역의 한학자들에게서 군자금을 모아서 지단에 전달하였다. 또한 김동운(金東雲)·배상준(裵尙俊)·황희도(黃熙道)·이태원(李泰元)에게서 수백 원에 달하는 군자금을 받아 내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21년 6월 14일 이윤실 등과 함께 덕천경찰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0월 2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2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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