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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休春

休春

1897. 11. 11 ~ 1960.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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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休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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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옥구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7년 11월 11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 10월 2일 옥구농민조합(沃溝農民組合) 서수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7년 11월 20일 일본 농장회사인 주식회사 이엽사(二葉社)가 75%에 달하는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는 등 가혹하게 농장을 경영하여 많은 소작농들이 고통을 겪었다. 이에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는 농장 지배인 사이토 신이치(齋藤信一)에게 소작료율을 낮춰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엽사 농장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는 소작료 감면이전까지 소작료를 불납하기로 하고 이를 농장 측에 통지하였다. 1927년 11월 24일 옥구군 서수면 경찰관주재소 일제 경찰은 위 사건을 계기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위원장 장태성(張台成)을 붙잡았다. 붙잡힌 장태성은 임피면(臨陂面) 경찰관주재소에서 구류되었다가 군산경찰서로 압송될 예정이었다. 장태성의 체포 및 압송 소식을 접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간부인 박상호(朴相浩)와 김행규(金杏奎)는 상의 끝에 장태성을 탈환하기로 계획하였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주민들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때 장태성의 탈환을 위해 모인 3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임피면 경찰관주재소로 이동하였다. 1927년 11월 25일 3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임피면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면서 “장태성을 돌려다오. 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군산까지 따라간다”라고 외쳤다. 그 다음 장태성을 체포한 도순사(道巡査) 김종현(金宗鉉)을 끌어내어 구타하고, 실내에 구금 중이던 장태성을 탈환하였다. 마지막으로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면서 임피면 경찰관주재소를 떠났다. 같은 날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의 간부 박상호가 붙잡혀서 서수면 경찰관주재소에 구금되자 오후 10시경 신문관(申文官)·이성순(李聖淳)·정영운(鄭永云)·이기렬(李基烈) 등과 함께 주민 200여 명을 이끌고 서수면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임피면 및 서수면의 경찰관주재소의 습격 소식을 들은 군산경찰서는 경찰관 수십 명을 서수면으로 파견하였다. 서수면에 도착한 일제 경찰은 옥구 소작쟁의에 참여한 주민들을 탄압하고 주도자들을 검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동료 30여 명과 함께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구금탈취죄, 소요죄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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