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秋珩
秋珩1922. 6. 25 ~ 1986. 7.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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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9) 1922년 6월 25일 경기도 인천부(仁川府) 목월정(木越町, 현 인천시 잠동구 간석동)에서 태어났다. 1942년 판결문에 활동 당시 주소는 함남 함흥부(咸興府) 산수정(山手町)으로 기재되어 있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는 산남(山南)이며, 아명(兒名)은 이광기(李廣基)이다. 일제 말기에는 석촌추형(石村秋珩)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부평군(富平郡) 문학면(文鶴面)에 위치한 부내공립보통학교에 5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한 후 인처부에서 신문배달과 점원 등을 하였고, 1938년 4월 경부터는 함흥부에서 식목직(植木職)으로 일하였다. 1941년 6촌 형인 이연형(李連珩)에게 윤석균(尹錫均)을 소개받았다. 윤석균으로부터 수원(水原)에 조선독립당(朝鮮獨立黨)이라는 비밀결사가 독립을 위해 활동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여기에 가입해 국권회복에 함께 힘쓸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동의하고 조선독립당에 들어가 함께 활동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11월 5일 인천항 버스정류장 앞에서 조선독립당의 유지 비용으로 120원을 납부하였다. 이후 이연형의 집에서 당의 회비와 유지 비용으로 두 차례에 나누어 65원을 납부하는 등 모두 185원의 자금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42년 10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1943년 10월 7일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광복 이후 1946년부터 한국독립당에 참여해 초급행정위원·행정연대위원·상임위원 등을 맡았고, 1970년에는 원호처 특임행정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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