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廷順
廷順1919. 3. 21 ~ 1992. 11.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열단
-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 · 조선의용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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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8) 1919년 3월 21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독도면(纛島面) 동독도(東纛島, 현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2가)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준(李俊)·이가정순(李家廷順)을 사용하였다. 1934년 3월 독도면 독도공립보통학교(纛島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여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의 급사(給仕)로 채용되었지만 곧 그만두었다. 1936년 4월에는 경기공립중학교(京畿公立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39년 봄 일본어 강제사용 방침에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것을 염려하였다. 그리고 민족주의·공산주의 사상에 흥미를 가져 독립과 신사회를 희망하던 송택영(宋澤永)과 친분을 쌓고 그에게 사상적 감화를 받아 민족주의 사상을 품고 독립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에 송택영·임원빈(林元彬)등의 주도로 조직된 조선인해방투쟁동맹(朝鮮人解放鬪爭同盟, 약칭 C.H.T)에 참여해 함께 회합하였다. 같은 해 11월 11일 중앙위원회를 폐지하고 서기국·이론부·실천부를 설치하였는데 이때 신숙범(愼淑範)·이이일(李二逸)과 함께 실천부를 맡아, 학생·노동자 층을 대상으로 동지들을 모집하였다. 1940년 11월 19일 자택에서 대촌행량(大村幸良)·양동섭(楊東燮) 등 동맹원들과 회합하였다. 이 자리에서 임원빈이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 2대 사상을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는 연구 그룹을 조직해야 하고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하자”는 제안으로 계림공진회(鷄林共進會)라는 연구단체를 조직하고, 기관지로 『공진(共進)』을 발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11월 23일 결사의 조직을 변경하여 기존에 있었던 중앙위원회를 다시 설치하고, 작전연합위원을 협의해 결정하는 등 조직의 확대와 연구·기관지 발행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1940년 11월경 5학년 재학 중에 퇴학당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941년 초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42년 12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풀려날 때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약 21개월 동안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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