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급
張世岌1858. 10. 1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1919년 풍산군 풍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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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2) 1858년 10월 17일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하지경리(下地境利) 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풍산군 이인면(里仁面) 신풍리(新豐里)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 등에서 일제히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를 주도한 천도교 중앙총부는 각 지역의 천도교인들을 규합해 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계획을 세웠다. 풍산군에서는 천도교구 교구장 주병남(朱炳南) 등을 중심으로 3월 14일 풍산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천도교인으로 박인진(朴寅鎭)·주의락(朱義洛)·이학현 등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고, 이들과 함께 태극기 등을 제작하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3월 14일 풍산군 안산면 하지경리에 위치한 천도교전도교실로 가서, 주병남을 비롯한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하지경리의 호암(虎岩)에서 노원리(老院里)로 향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할 인원들을 규합한 맹시정이 시위대와 함께 천도교구당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천도교당 안에서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김창선(金昌善)·박인진은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후 이들과 함께 ‘대한독립’을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시위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이 천도교구당으로 진입해 해산할 것을 요구하자, 시위대와 함께 이인면 신풍리 읍내에 위치한 풍산헌병분견소로 이동해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그러자 총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와 함께 헌병분견소 안으로 들어가 기물을 파괴하고 무기를 탈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를 향해 일제 헌병이 총격을 가해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리고 오후 4시경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군경은 풍산군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에 대한 검거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에 벌금 30원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6월에 벌금 20원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2월 24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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