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도
張聖道187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수안군 수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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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 석교리(石橋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0년 당시 나이가 50세이므로 1871년생으로 추정된다.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읍내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천도교 중앙총부는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도모하고자, 각 지역의 천도교구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그 일환으로 천도교 중앙총부 천도교회 월보과장(天道敎會 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은 황해도 곡산군(谷山郡)에 거주하는 이경섭(李景燮)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경섭은 3월 1일 저녁 수안면 석교리(石橋里)의 수안천도교구를 방문하고, 교구장 안봉하(安鳳河)를 포함해 김영만(金永滿)·나찬홍(羅燦洪)·이영철(李永喆)·홍석정(洪錫楨)·한청일(韓淸一) 등에게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독립선언서 70장을 전달하였다. 3월 2일 수안천도교구실에서 평소 독립을 열망하였던 안봉하·김영만·나찬홍·김형선(金炯宣)·이달하(李達河)·나용일(羅容日)·홍두옥(洪斗玉)·안창식(安昌湜)·홍길재(洪吉載)·이윤식(李潤植)·홍두익(洪斗益)·이영철·이응호(李應浩)·최용식(崔鎔植)·홍석정·한청일 등과 더불어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3월 3일 수안면 읍내 일대에서 천도교인 등을 규합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3월 2일 오후 3시경 황해도 경무부장은 수안헌병분대장에게 “독립선언서의 전국적 확산 가능성에 따른 단서 포착을 위해 수안천도교구실을 임의로 수색하라”는 명령이 담긴 전보를 보냈다. 이를 전달받은 수안헌병분대 헌병들이 즉시 수안천도교구로 출동해 소사실(小使室)에 있던 천도교 인사들을 체포하고 독립선언서를 압수하였다. 이때 함께 있던 천도교 인사들과 같이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수안헌병분대로 연행되었다. 한편 체포를 면한 이영철·홍석정·한청일 등은 천도교인들을 규합해 3월 3일 새벽 6시부터 수안면 읍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영철·한청일·홍석정 등이 먼저 시위대 130~140명을 이끌고 ‘한국 독립’을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그리고 이영철이 수안금융조합에서 독립을 선언하는 연설을 마치자, 시위대는 수안헌병분대로 몰려가서 한국 독립을 선언하면서 헌병분대의 퇴거를 요구하였다. 오전 11시에는 이동욱과 오관옥이 1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을 외치면서 수안헌병분대로 가서 헌병분대의 퇴거를 외치면서 사무실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홍석정·한청일·오관옥 등은 오후 1시경 15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수안헌병분대로 갔다. 이들이 정문을 통과하자 일제 헌병들이 총격이 가하여 홍석정·한청일은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오관옥도 부상을 입은 후 결국 사망하였다. 이 일로 붙잡힌 사람들과 함께 이른바 내란죄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며 관할재판소로 경성지방법원을 지정하였다. 그러나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항소를 수리하지 않았고, 그해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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