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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흠

張尙欽

1895. 12. 20 ~ 1920.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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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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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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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0)

관련 사건

  • · 1919년 칠곡군 약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0) 1895년 12월 20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약목면(若木面) 평복동(平福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9일 약목면 평복동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칠곡군 약목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4일 안도수(安道秀)와 김익시(金益時) 등이 약목 장터에서 거사를 벌이려고 계획하였지만, 실패한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한편 칠곡군의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는 3월 초부터 활발하게 만세시위가 벌어졌고, 인근 지역인 성주군(星州郡)에서도 4월 초 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4월 9일 밤 약목면 평복동에 거주하던 지하수(池夏洙)는 평소 독립을 희망하던 중에 인근 지역의 만세운동에 자극받고, 자신의 마을에서도 만세시위를 실행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지하수의 권유로 권성수(權星洙)·김봉근(金奉根)·김동술(金同述)·박수환(朴洙煥)·박수병(朴洙丙) 등과 함께 권군필(權君弼)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때 지하수는 인근 지역에서도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고 있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은 독립국이 되는 방법이라고 참여자들을 설득하였다. 권성수 또한 지하수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함께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참여한 청년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하고, 마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수차례 외쳤다. 이 만세소리를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사람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이후 장독(杖毒)이 올라 약 1년동안 고생하다가, 결국 1920년 5월 2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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