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기
張琫起1902. 9. 5 ~ 1997. 3.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부산 기장읍(4.5)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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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2년 9월 5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기장읍(機張邑) 대변리(大邊里,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해산물 판매상으로 생계를 이었으며, 그 해 4월 5일 기장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일제히 일어났다. 3월 3일에 부산과 마산에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경남 각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3월 13일 마부(馬夫) 김수문(金守文)이 동래에서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서재선(徐再先)에게 전달하였다. 서재선은 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읽으며 만세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3월 28일 김도엽은 기장면 사무소 재무서기 최창용(崔昌鎔)을 통하여 비밀리에 면사무소 등사판과 원지를 빌려서 독립선언서 400장을 인쇄하였다. 김도엽은 ‘양심발원인도적자유민족(良心發源人道的自由民族)’라고 혈서한 깃발과 ‘조선독립만세(朝鮮獨立萬歲)’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이라고 적은 깃발을 준비하였다. 4월 5일 오전 11시에 기장읍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주도 인물들은 미리 준비한 큰 깃발을 휘날리고 독립선언서를 장터에 있었던 군중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서 오기원(吳基元)·최학림(催鶴林) 등과 함께 장꾼들을 독려해서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가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들은 공포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위협하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오후 5시까지 일제 경찰의 무력에 맞서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당국에서 추가 병력을 기장읍에 파견해서 시위대를 포위하자 해산하였다. 일제 군경이 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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