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술
張命述1895. 2. 8 ~ 1935. 11.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영덕 창수면(3.19)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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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95년 2월 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19일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하기 시작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경북 영덕군 창수면에서도 이러한 소식이 전달되자 곧이어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되었다. 영덕군 창수면 시위는 3월 18일 일어난 영해면 시위의 영향으로 일어난 것이다. 영해면의 만세운동은 영덕군 각지에서 2,0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여 성내시장 장날을 이용하여 대규모로 일어났던 경북 지방의 대표적인 만세운동이었다. 영해면 시위 소식을 들은 창수면 오촌동(梧村洞)과 삼계동(三溪洞) 주민들이 다음날인 3월 19일 영해면으로 가던 중에 신기동(新基洞) 주민들과 만나 협의하여 영해면 행을 중지하고, 신기동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 창수동 마을 구장인 이수각(李壽珏) 등이 중심이 되어 창수면 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현설·이수각·이학술 등은 이를 위하여 동네의 집집마다 다니면서 주민들을 시위에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독려하였는데, 이때 이학술의 권유를 받고 이에 동의하여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9일 400여 명의 오촌동과 삼계동 주민들이 집결하여 창수주재소를 향하여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들 손에는 태극기를 비롯하여 도끼나 곤봉, 목봉 등의 무기가 들려있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김재수와 권명덕 등이 앞장서 주재소를 공격하자 이에 호응하여 박천석·김보식 등과 함께 달려들어 몽둥이로 주재소의 건물과 각종 기물을 파괴하는데 힘을 보탰다. 또한 주재소를 파괴한 인원 중 30여 명의 무리에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오용이(吳龍伊)의 집을 안내하고 함께 몰려가 의류 및 문서 등을 파손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공문서 훼기, 각 기물 손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항소를 신청한 결과,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으나 1심과 같은 징역 1년을 다시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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