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식
蔣萬植1874. 10. 5 ~ 1944. 9.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밀양군 단장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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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874년 10월 5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단장면(丹場面) 구천리(九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밀양군 단장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4월 4일 밀양군 단장면 대룡리(臺龍里)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대룡리 만세시위는 구천리에 위치한 표충사(表忠寺)의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서 기획되었다. 3월 20일 통도사(通度寺) 승려 50명은 표충사를 방문하였다. 그 자리에서 표충사 승려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비밀리에 계획하였다. 이후 표충사에서는 승려 이장옥(李章玉)·이찰수(李刹修)·오학성(吳學成)·손영식(孫永植)·김성흡(金性洽)·구연운(具蓮紜)·오응석(吳應石)이 중심이 되어서 단장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으며, 대룡리 장날이 열리는 4월 4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표충사에서 강사 겸 법무계(法務係)를 맡고 있던 이장옥은 법무계 서기 김종석(金鍾碩)에게 만세시위를 알리는 격문을 등사하게 하였다. 이와 동시에 시위에 사용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였다. 4월 4일 아침 마을 사람들로부터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받았다. 이때 만세시위의 취지에 동감하여 성도일(成道一)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룡리(臺龍里)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로 가는 도중에 사연리(沙淵里)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합류해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대룡리 장터로 향하였다. 한편 대룡리 장터에는 이미 아침부터 표충사의 승려와 학생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들고 대룡리 장터에 도착해서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정오 무렵 5,000여 명의 군중이 장터에 모였다. 표충사 승려들은 ‘독립만세’가 써진 깃발을 들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장터에 도착해서 시위대에 합류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를 행진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대룡리에 주재하는 헌병주재소로 갔다. 그 곳에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시위대 일부는 주재소를 대상으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헌병주재소에 급파된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다. 오후 1시 30분 경 시위대는 헌병의 강경 진압으로 해산하였지만, 헌병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주재소로 다시 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은 시위를 탄압하는 한편,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체포하였다. 시위 참여자로 지목되어 붙잡혔다.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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