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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憲祥

憲祥

1877. 3. 9 ~ 1959.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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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憲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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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연기(燕岐)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연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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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1919년 연기군 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77년 3월 9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방축리(方丑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31일 남면 방축리에서 전개된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연기군에서는 각 지역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횃불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제1차 횃불만세시위는 3월 23일 전개되었고,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제2차 횃불만세시위가 연기군의 각 지역에서 거행되었다. 남면의 각 마을에서는 대체로 3월 31일 제2차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보통리(洑通里)에서는 31일 밤 8시 경부터 박원칠(朴元七)이 주도하여 약 10명의 주민들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양화리(陽化里)·진의리(眞儀里)·월산리(月山里)에서는 연합으로 제2차 횃불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3월 31일 양화리의 이덕민(李德敏)의 집에서 임덕문(林德文), 진의리의 김봉식(金鳳植), 월산리(月山里)의 임영복(林永福) 등이 회합해 만세시위 계획을 협의하였고, 밤에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아월산(雅月山)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31일 밤 방축리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역설하고, 다른 마을에서도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될 것이므로 함께 참여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주장하였다. 30여 명의 주민들이 이에 공감해 동참할 것을 결의하였다. 주민들을 규합해 오후 8시경 마을 인근의 황우산(黃牛山)에 올라가 주민들과 함께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선창하였다. 다른 참여자들이 호응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한동안 횃불만세시위를 이어나갔다. 참여자 색출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방축리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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