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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일

任泰馹

1898. 9. 9 ~ 1959.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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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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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양(光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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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광양군 진월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8년 9월 9일 전라남도 광양군(光陽郡) 진월면(津月面) 송금리(松琴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5일 광양군 진월면 무적도(無敵島)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전남 광양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이려고 기회를 엿보았다. 4월 15일 진월면 무적도에서 시회(詩會)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여기에 참가하는 문사와 학생들에게 만세운동의 참가를 독려하기로 결심하였다. 시회가 열리기 전날인 4월 14일 마을의 학생 몇 명과 함께 한지에 태극기 2장을 그렸다. 그날 밤 월길리(月吉里)의 서당에 가서 “우리는 내일 선소리 무적도에서 진월·진상(津上) 양면의 선비들이 모두 모이는 시회에 참여해서 이 깃발을 높이 들고 조선 독립을 외칠 예정이니 각 생도들도 함께 가서 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였다. 그리고 “하동군에서는 어디서나 계속 만세를 부르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 광양군 내에서는 만세를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은 광양군 내에는 뼈대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동군에서는 금후로 광양군민이 갈 때에는 못 들어오게 한다는 말이 있다”라면서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4월 15일 아침 서당 학생 정순제(鄭淳悌) 등 6명을 데리고 시회 장소로 갔다.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려 태극기를 꺼내서 만세를 부르려고 하였지만 경계 중이던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1919년 5월 8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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