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봉
任泰奉1895. 11. 14 ~ 1977. 12.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청양군 운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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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5년 11월 14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위라리(位羅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승태이다. 1919년 4월 6일과 8일 청양군 운곡면에서 일어난 횃불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소식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충남 청양군 운곡면에도 전파되었다. 운곡면에서는 1919년 4월 6일과 8일 마을 간의 연락을 통해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전개된 만세운동에 양일간 참가하였다. 면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茅谷里)·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 등 운곡면 주민 600여 명은 4월 6일 밤 마을 주변의 산 위로 올라가 일제히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로 야간에 산 위에서 전개되는 횃불만세운동은 지리적인 특성과 야간의 익명성 때문에 참여자 식별이 쉽지 않았고, 일제 군경이 출동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횃불만세운동은 소수의 인원으로도 상대적으로 쉽게 실행할 수 있었고, 야간에 멀리서도 명확하게 보이는 효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의 파급력까지 증폭시킬 수 있었다. 4월 6일 밤 사전 연락을 받고 위라리 주민들과 함께 운곡면 일대에서 전개된 횃불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모곡리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였지만 야간에 산 위로 올라가야 하는 위험부담 때문에 쉽게 만세시위 현장까지 다가가지 못하였고, 산 아래에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며 대응하였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4월 8일에는 인근의 비봉면(飛鳳面) 주민들과 함께 연합하여 제2차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10시경부터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뒷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운곡면과 비봉면 주민 600여 명이 함께 운곡면 내의 높은 곳에서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비봉면 신원리에서도 100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청양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출동해 무력으로 시위대를 탄압해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1일 즉결심판에서 2차례 횃불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태(笞) 90도(度) 처분을 받아 고초를 겪다가 4월 23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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