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재
任哲宰1892. 6. 18 ~ 1972. 8.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2년 6월 18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백곡리(白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청양군 정산면 정산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청양군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백곡리의 유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을 현장에서 목격한 정산면 백곡리의 홍범섭(洪梵燮)이 고향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생각으로 독립선언서를 숨겨 가지고 돌아왔다. 4월 5일 아침 자택에서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박상종(朴商鍾)·홍세표(洪世杓) 등과 함께 홍범섭이 가지고 온 선언서를 함께 읽은 후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을 정산면에서도 벌일 것을 논의한 끝에 정산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서 조금 늦게 합류한 윤기중(尹箕重)·김필현(金弼鉉)·윤구학(尹龜學)·이건호(李建鎬)·이태호(李台鎬)·박춘서(朴春西)·윤봉학(尹鳳鶴)·이건직(李建直)·우달명(禹達明) 등에게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설명하자, 모두 동의하고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준비를 마치고 홍범섭 등과 함께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오후 3시경부터 시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당시 일제는 정산헌병분견소의 헌병들을 장날의 만세운동에 대비하여 정산시장의 북쪽에 배치하였다. 만세시위를 시작하자마자 출동한 일제 헌병들에 의해 시위대는 정산시장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장 안으로 진입한 시위대와 함께 더욱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은 주도자들을 붙잡아야 시위대가 해산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향해 붉은색의 잉크를 뿌렸다. 이때 옷에 잉크가 묻은 3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의 주도자로 간주되어 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하지만 이후 만세시위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고, 체포된 주도자들을 대신해 시위대를 이끌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가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다음 날까지 확산되었다. 이 일로 붙잡혀 조사를 받고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6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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