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志烈
志1900 ~ 1919. 3.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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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금소동(琴韶洞) 출신이다. 본관은 울진(蔚珍)이다. 기록에 따르면 1919년 당시 20세로,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과 신덕동(新德洞)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안동군에서도 안동면을 시작으로 예안면(禮安面)과 도산면(陶山面) 등 여러 곳에서 연이어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3월 21일에는 임동면(臨東面)과 길안면(吉安面), 일직면(一直面)에서도 만세시위가 펼쳐질 정도로 만세운동의 열기가 가장 고조된 때였다. 임하면 금소동과 신덕동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참여한 임찬일(林贊逸, 또는 임찬일(林燦逸))이 고향에 돌아와 청년들을 규합하면서 시작되었다. 3월 21일 거사 당일 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하고 비밀리에 약속 장소로 향하였다. 오후 6시경 약속한 장소에는 금소동 주민 등 100여 명이 나와 있었다. 주도자들은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맨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도자들의 선창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시위대는 금소동을 넘어 신덕동으로 향하였다. 임찬일과 노말수 등 주도자들이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신덕동 경찰관주재소로 향해 갔다. 만세행진에 인근 주민들이 계속 참여하면서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 300여 명에 이르렀다. 저녁 9시경 시위대는 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하여 주재소를 포위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쳤다. 만세소리에 주재소 안에 있던 순사들이 급히 출동하였고,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하여 무자비하게 총탄을 발포하였다.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시위대는 흩어지게 되었다. 잠시 물러났던 시위대는 더욱 격렬하게 저항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시 주재소로 몰려가 투석전을 벌이며 주재소 건물과 문서를 파괴하였다. 밤 11시경에는 면사무소로 가서 사무소의 지붕과 기둥만 남겨 놓은 채 건물과 기구를 파괴하고 공문도 파기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일제 경찰은 시위 다음 날부터 주도자들과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1919년 3월 26일 안동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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