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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俊哲

俊哲

1879. 3. 29 ~ 194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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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俊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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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박천(博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박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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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삭주군 외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879년 3월 29일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 동남면(東南面) 일원리(一院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무렵에는 평북 삭주군(朔州郡) 외남면(外南面) 대관동(大館洞)에 거주하였고, 기독교를 신앙하여 기독교회당 조수(助手)로 지내고 있었다. 1919년 3월 17일 삭주군 외남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삭주군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5일 천도교와 기독교가 연합하여 읍내에서 시위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3월 9일에도 거듭 반복되었다. 이 때문에 삭주군 내에서는 만세시위와 독립선언에 대한 정보와 소문이 빈번하게 퍼지고 있었다. 3월 12일 박정찬(朴正찬)의 여인숙에 거주하는 배원근(裵元根)·김승엽(金承燁)에게 민족자결론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으며,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보고는 함께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어 3월 16일에는 남서면(南西面) 창평교회(創坪敎會) 신도 70여 명에게 만세운동 소식을 전달하였다. 삭주군 외남면 대관동 장날인 3월 17일 장날을 맞이하여 사람들이 시장으로 모여들었고, 오후 2시가 되자 계획대로 시위가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곳곳에서 만세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본격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금세 불어난 사람들로 시위대는 약 1,000명에 달하였다. 시위대는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와 대관독립단(大館獨立團)이라고 쓴 깃발을 흔들며 시장을 행진하였다. 만세시위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정탐하여 알고 있었던 조선총독부는 보병 77연대 산하 군인들을 파견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고 주도자를 체포하였다. 오후 3시경 다시 600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재개하였지만 일제 군경에 의해 곧바로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모두 23명이 검거되었는데, 이때 붙잡혀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시위에 참여한 일이 없다고 부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19년 5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고하였으나, 그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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