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應簾
應簾1900 ~ 1940. 3.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철원군 철원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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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강원도 철원군(鐵原郡) 인목면(寅目面) 도밀리(道密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20세로,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10~11일 철원군 철원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당시 보통학교에 다니면서 같은 학교 학생 이규정(李圭貞)과 농업학교 학생 박용철(朴容喆)·이해종(李海鐘)을 만나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고, 1919년 3월 10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만세시위를 준비하면서 교회와 청년회 측과도 연락하여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하였다. 박용철·이규정 등과 함께 학생들에게 시위 계획을 알리며 동참을 촉구하는 한편, 시위 때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며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경 집결 장소인 북간산(北看山)으로 향하였다. 주도자들과 함께 북간산에 모인 학생들을 지휘하여 서문(西門)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였다. 같은 시간 읍내에서는 곽진근(郭鎭根)·엄재형(嚴載亨) 등의 기독교 측과 이배근(李培根)·이학수(李學洙) 등의 청년회 측에서 군중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4시경 학생들과 함께 기독교와 청년회 측과 합류하여 함께 철원군청으로 향하였다. 500명이 넘는 시위 군중이 군청 앞에 모여 다시 한 번 만세시위를 펼쳤다. 시위는 헌병분견소 앞에까지 이어졌으며, 늦은 저녁까지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후 시위 군중은 다음 날 다시 모이기로 하고 흩어졌다. 3월 11일 만세운동은 이날 아침 철원역에서 시작되었다. 이소희(李昭姬)·이규정·송의선(宋義宣) 등과 함께 700여 명에 이르는 군중을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철원역 만세운동 소식에 일제는 헌병들을 급파하여 시위대를 저지하였지만, 시위대는 이를 뚫고 읍내로 행진하였다. 군중이 서문 거리에 이르렀을 때 일제는 기마 헌병을 출동시켜 무력으로 시위대를 저지하였다. 시위대가 행진을 멈추지 않자 헌병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시위대는 흩어졌고,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4월 및 벌금 20원(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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