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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又民

又民

1900. 7. 20 ~ 197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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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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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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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7월 2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고곡동(古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예천(醴泉)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琴韶洞)과 신덕동(新德洞)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임하면 금소동·신덕동 만세운동은 같은 마을에 사는 임찬일(林贊逸·林燦逸)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임찬일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와 이를 마을 청년들에게 알리며 만세운동을 제의하였고, 이때 동참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박유석(朴有石)·노말수(盧末守)·임윤익(林潤益)·임동숙(林東淑)·임춘섭(林春燮)·임석현(林錫鉉) 등 금소동의 많은 청년들도 함께 뜻을 모았다. 이들이 처음 만세운동을 계획한 날은 3월 16일 길안면(吉安面) 장날이었지만, 거사 당일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어 부득이 21일로 연기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집에서 나와 거사 장소인 금소동으로 향하였다. 금소동 마을 앞에는 주도자들과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참여한 사람들, 금소동 주민 등 100여 명이 모여 들었다. 오후 6시 주도자들과 함께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군중도 ‘독립만세’로 화답하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금소동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이어 시위 장소를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가 있는 신덕동으로 옮겼다. 주도자들과 함께 계획한 대로 각자 맡은 시위대를 이끌고 신덕동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저녁 9시경 주재소 앞에 이르러 300여 명의 시위대는 주재소를 포위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주재소에 있던 일제 경찰들은 만세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와 총탄을 발포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맨손으로 시위를 하던 군중에게 날아든 총탄으로 시위대는 잠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와 중상자가 발생하였다. 밤 11시경 주도자들과 함께 흩어졌던 시위대를 모아 다시 주재소로 향하였다. 무자비한 살상을 행한 일제 경찰에 분노하여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출입문과 창문, 벽, 가스 등에 돌을 투척하여 파괴하였다. 주재소 안으로도 들어가 사무실 집기와 벽을 부수고 문서를 파기하였다. 이어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시위대 소리에 면서기 김병린(金柄麟)은 이미 뒷산으로 달아난 뒤였다. 돌과 몽둥이를 들고 면사무소 문과 창문을 부수고 사무소 안에 들어가 벽과 책상, 의자 등의 기물과 문서들을 파괴하였다. 면사무소에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한 이후 시위대는 자진하여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으로 곧 붙잡혔다. 1919년 4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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