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善長
善長1868. 4. 2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장단군 대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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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868년 4월 25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소남면(小南面) 두곡리(斗谷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두곡리에서 마을의 구장(區長)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해 4월 1일과 3일 장단군 대남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장단군에서는 1919년 3월 23일 진남면(津南面) 거곡리(巨谷里)에서 110여 명의 주민들이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운동을 전개한 이래, 3월 26일부터 본격화되어 4월 3일까지 군내의 각 지역에서 집중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대남면의 만세운동도 장단군 전 지역의 만세시위가 집중되었던 기간인 4월 초에 두 차례 일어났다. 대남면의 만세운동은 장좌리(長佐里)의 함정원(咸貞元)과 이재삼(李在三)이 주도하였다. 함정원 등은 3월 1일 이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대남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거사일을 4월 1일로 정하고, 조직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4월 1일 대남면과 인근 지역의 각 구장 앞으로 「통지(通知)」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발송하였다. 그 문서의 취지는 “오늘 밤 주민 각자는 작은 태극기 1류, 5명마다 봉화 1개, 각 동마다 큰 태극기 1류를 가지고 위천리(渭川里)의 용산동(龍山洞)으로 집합하라”라는 내용이었다. 4월 1일 소남면 두곡리의 구장 앞으로 보내진 「통지」를 받고 그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즉시 「통지」를 주민들에게 회람시켜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한국 독립의 취지에 찬성하는 주민들과 태극기와 횃불을 제작하는 등 만세운동 준비를 서둘렀다. 이날 밤 용산동에 소재한 대남면사무소 앞과 사립 명성학교 앞에 100여 명의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모였다. 함정원·이재삼 및 각 마을의 구장들과 함께 주민들을 지휘하여 대열을 형성하고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횃불을 올려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으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남면사무소 앞과 명성학교의 교정을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늦은 밤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자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4월 1일의 만세시시위로 자신감을 얻고 사기가 오른 대남면의 주민들은 4월 3일에도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함정원·이재삼 등 대남면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은 새로운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더욱 많은 주민들의 참여 속에서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4월 3일의 만세시위는 늦은 밤이 아닌 오후 1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실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에도 준비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4월 1일의 만세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함정원과 이재삼의 지휘에 따라 대남면 성곡리 구장 박치관, 장도면 항동리 구장 우병연, 오음리 구장 윤원구 등과 함께 각각의 마을에 만세시위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알려 주민들의 참여를 더욱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태극기 등 만세시위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였다. 또 4월 1일의 만세시위 소식이 인근 지역으로 전파됨에 따라 인접한 다른 지역에서도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이 결과 4월 3일 오후 용산동의 대남면사무소 앞에 이틀 전 만세시위 때보다 10배가 많은 1,000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운집하였다. 함정원·이재삼 등의 지휘에 따라 운집한 주민들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하고, 시위 대열을 형성하여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때 함정원·이재삼 등과 함께 주민들을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면소재지인 용산동의 곳곳을 행진하는 대규모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는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체포하여 더 이상의 만세시위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일제 경찰들을 대남면으로 파견하였다. 일제 경찰들의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색출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20년 4월 28일 이른바 은사령(恩赦令)에 의해 예정보다 1개월 일찍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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