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호
林玟鎬1891. 2. 25 ~ 1926. 5.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담양청년회
- · 담양노농회
- · 조선노농총동맹
- · 동아일보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담양군 담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91년 2월 25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담양면(潭陽面) 천변리(川邊里)에서 태어났다. 담양면작조합 주사로 일할 때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담양면 만세시위의 주도자로 활동하였다. 3월 13일 정기환(鄭基煥)의 집에서 국한종(鞠漢鍾)·정경인(鄭璟仁)과 함께 담양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3월 14일 담양시장에서 임기정(林基正)에게 광주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하고, 담양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였다. 다음 날 담양 양각산(羊角山)에서 동지들과 함께 장날로 시위 날짜를 정한 뒤 태극기를 만들고, 등사판으로 격문을 작성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붙잡혀 1919년 5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정기환의 선동에 동의했을 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고, 그 행위도 비밀리에 이루어져 외부에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에 관해 불온한 언론·동작을 하거나 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었다. 1920년 6월 담양청년회가 창립될 때 총회간사를 맡았고, 이후 1921년 3월까지 부회장을 지냈다. 1922년 7월 29일에 담양청년회 회장으로서 재외유학생연합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하계대운동회를 주관하였다. 1924년 4월 15일부터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노농대회와 4월 18일부터 열린 조선노농총동맹 발기회에 담양노농회 대표로 참가하였다. 1924년 9월 29일 담양소작인연합회 창립총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4년 11월 19일 조선청년총동맹의 청년단체연령제한문제조사연구위원회 위원, 12월 7일 서울청년회관에서 열린 사회주의자동맹회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1월 31일 전남해방운동자동맹 창립총회에서 「규칙과 선언·강령」 기초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조선사회운동자동맹 발기준비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그 외 1924년 6월부터 1925년 4월까지 『동아일보』 광주지국장 겸 기자, 목포지국장을 차례로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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