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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命祚

命祚

1905. 2. 9 ~ 196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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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命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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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동래군 동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5년 2월 9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사상면(沙上面, 현 부산광역시 사상구)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919년 3월 13일 동래군 동래면(東萊面)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를 주도한 종교계와 학생들은 만세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서울에서 ‘경성학생단(京城學生團)’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에 내려온 학생들은 부산상업학교 학생들에게 선언서를 전달하며, 부산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도록 권유하였다. 이러한 권유에 부산상업학교 학생들이 찬동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이를 사전에 감지한 일제 당국의 감시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3월 7일에는 연희전문학교 학생대표가 동래로 내려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대표 김귀룡(金貴龍)·고영건(高永建)·엄진영(嚴進永) 등을 만나 선언서를 전달하면서 만세시위 실행을 권유하였다. 이에 동래고보 학생대표들은 2·3·4학년 학생들과 모여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동래고보 2학년 이수열(李守烈)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 3월 10일 무렵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재학 중인 곽상훈(郭尙勳)이 동래로 내려와 동래고보 수학교사 이환(李環)에게 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환의 권유로 동래고보 학생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한 후, 3월 13일 오후 2시 동래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학생들은 만세시위에 사용할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하고, ‘대한국독립만세(大韓國獨立萬歲)’라고 쓴 큰 깃발과 ‘오왕약살(吾王藥殺: 우리 임금이 독약으로 살해되었다)’이라고 적은 전단지도 제작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嚴進永)이 옛 군청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때 동래고보 학생들과 함께 선언서와 전단지를 장터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배포하면서 망미루(望美樓)와 동래읍성 남문(南門)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제 기마경찰 20~30명과 헌병 50여 명이 시위대를 포위하고 무력을 사용해 강경하게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래고보 학생들과 함께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3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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