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萬圭
萬圭1893. 1. 10 ~ 1958. 7.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하동군 화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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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3년 1월 10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화개면(花開面) 정금리(井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봉규(林奉圭)이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0일 하동군 화개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화개면사무소에 시위 관련 문서를 부착하였다. 화개면 만세시위를 처음으로 계획한 인물은 정금리에 사는 쌍계사(雙溪寺) 승려 김주석(金周錫)이었다. 김주석은 학생인 정상근(鄭湘根)·양봉원(梁奉源)과 함께 화개 장날인 4월 6일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준비를 진행하였다. 4월 6일 오후 6시 이들은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포한 후,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일제 군경에 의해 만세시위는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주도한 인물들은 체포되었다. 4월 10일 밤 정금리 이정수(李正洙)의 집에서 이정철(朴正哲)·이강률(李康律) 등과 더불어 4월 11일 화개리 장날에 다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정수의 의견에 따라 이정철이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광고’라는 이름의 문서와 ‘면직원에게 사직을 권고함’이라는 사직권고서를 각각 작성하였다. 그날 밤 이정철과 이정수 등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작성된 문서를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화개면사무소 앞의 돌과 정문에 각각 부착하였다. 이로써 사람들에게 다음날 예정된 만세시위를 알리며 참여를 독려하였고, 면사무소 직원들이 사임하고 만세시위에 적극 협조하도록 경고하였다. 그리고 4월 11일 정오 무렵 이정수 등 주도자들과 함께 화개리 장터에 모인 사람들을 독려해 만세시위를 전개하려고 하였지만, 일제 군경에게 저지당하고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6월 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협박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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