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化春
化春1888. 1. 16 ~ 1967. 8.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4월 8일 홍성군 장곡면 만세시위 참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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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88년 1월 16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무술(李戊戌)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홍성군 장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홍성군 장곡면의 김동하(金東河)·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한상철(韓相喆)·김차제(金次濟) 등과 협의하여 4월 7일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4월 7일 이들과 함께 장곡면 화계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주민들을 이끌고 마을 앞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동하는 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고 연설하였다. 참석자 다수와 함께 적극 동의하여 시위 대열을 조직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로 행진하는 도중 광성리(廣城里)·가송리(佳松里) 등의 주민들이 합류하였다. 이들을 지휘하여 면사무소 뒷산인 응봉산(鷹峰山)에 올라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일제의 만행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한상철의 연설을 통해 만세운동에 대한 서로의 결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김동하와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면사무소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면사무소에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김동하는 “면사무소 직원이 한명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하여 면사무소를 부수라고 외치며 선두에서 먼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김동하와 행동을 같이하여 김동완·김용숙·김차제·한상철 등과 함께 면사무소를 향해 투석하면서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의 면사무소 공격을 독려하였다. 이에 대다수의 주민들이 돌과 몽둥이 등을 이용하여 정문 기둥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 기물, 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시위대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김동하·윤낙중 등이 강제로 연행되었다. 4월 8일 밤 6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붙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또 다시 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이후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대항하다가 붙잡혔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3년 6월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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